저문 날의 삽화 2

2021. 6. 8. 15:41소소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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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날의 삽화 2

 

- 오동동 막걸리집(일명 대갈빼이집)

 

저문 날의 삽화2


마산의 오동동 패션 호텔 맞은 편 좁은 골목길. 그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감나무집이 있고, 그곳과 비스듬히 마주한 곳에 또 다른 막걸리집이 있었다. 감나무집에도 간혹 갔지만, 그곳과 마주한 집을 친구들과 더 자주 갔었다. 우리가 그곳을 자주 애용한 건 순전히 그 놈의 돈 때문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모두 주머니를 털어 봐도 빤했던 게 그 당시 우리 주머니 사정이고 보니, 앞서 소개한 양산박이나 명태전집을 찾게 마련이었다.

 

우리는 명태전집을 ‘찌짐집’ 또는 ‘대갈빼이집’으로 불렀다. ‘찌짐집’은 전을 부쳐 파는 집이라 그렇게 불렀던 것 같고, ‘대갈빼이집’은 명태대가리로 부친 전이 그 중 제일 맛있었기 때문에 주문할 때면 ‘제일 큰 대갈빼이로 주이소’라고 해서 아마도 붙여진 이름일 게다.

 



막걸리
부추전



암튼 이 ‘대갈빼이집’의 주인아주머니 아들이 고등학교 후배라 우리를 참 잘 대해줬던 것 같다.

오늘처럼 흐린 날 저녁이면 술이 고팠다. 그 날도 무척이나 술이 고팠다. 근데 수중에 돈이라고는 동전 몇 개가 전부였다. 그러나 어쩌랴 술은 마셔야지......

그때만 해도 연극 한다는 둥, 글을 쓴다는 둥 같은 '얼치기'였던 친구 녀석에게 무작정 전화를 했다. 그 놈의 주머니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래도 일단 마산시민의 만남의 장소 시민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우선 먹고 보자는 심산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예의 그 ‘대갈빼이집’으로 향했다. 호기롭게 주문을 하자 이내 잘 굽힌 명태전이 소주와 함께 나왔다. 술잔이 몇 순배 도는 동안 우리는 문학이라는 놈과 그걸 지은 놈까지 죽였다 살렸다 반복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모습이 지금에야 떠올리면 가관이지만, 그 때는 꽤 치열했다.

그곳은 사진으로도 남지 않았다


근데 술잔이 비워지는 만큼 근심도 커져만 갔고,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 때 그 놈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종이 쪼가리에 뭘 적더니 다짜고짜 다음 구절을 쓰라고 했다. 나는 술김에 한 구절을 쓰고는 놈에게 건넸고, 몇 번 더 왔다 갔다 한 후에 제법 그럴싸한 詩가 완성되었다.

우리는 본인이 지은 구절을 윤송하며 술 한 잔을 마셨다. 술맛이 제대로 났다. 그 놈이 한참 더 음미하더니 주인아주머니를 불렀다. 말인 즉, 오늘 술값은 이 시로 대신하면 안 되겠냐는 것이었다. 지켜보는 내가 얼굴이 화끈거려왔다.

근데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주인아주머니는 보기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 “좋은 글 많이 써라.”

몇 해 전, 녀석과 그 ‘대갈빼이집’이 있던 골목을 찾았다. 이리저리 아무리 찾아봐도 골목이 보이지 않았다. 재개발되어 전혀 다른 길이 되어 있었다. 추억은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을 때 그 감흥이 더욱 잘 살아나는 법인데, 변형된 모습이 왠지 서운하고 씁쓸했다.

추억과는 상관 없는 곳에서 녀석과 술을 마셨다. 이번에는 제대로 셈을 치르고 나왔다. 나는 글과는 무관한 일로 살아가고, 녀석은 은행을 거쳐 모신문사 기자가 됐다. 그날 노을이 참 아름다웠던 것 같다.

저문 날에 또 하나의 삽화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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