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18. 16:16ㆍ소소한 일상
가버린 친구 이야기 4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드넓은 바다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눈물을 바다에 감추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녀석은 빈 잔에 남은 맥주를 부어 내게 내밀었다. 그게 녀석이 부어주는 마지막 술잔이 될 줄은 그땐 알지 못했다. 나는 그 한 잔을 마셨지만, 녀석과 같이 취해주지 못했다. 내가 녀석의 잔에 술을 따랐다. 잔이 채워지기가 무섭게 녀석은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살아있는 녀석에게 채워준 나의 마지막 술잔이었다.
여기저기서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신변정리를 위해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문자를 보냈던 것이었다. 녀석은 전화기를 붙잡고 “잘 살아라, 나는 간다.”고 되풀이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가지 여전히 녀석의 죽음을 감지하지 못했다. 아니 감지하기 싫었는지도 몰랐다.
함께 있던 친구가 회사에 들어가 봐야 한다며 내게 녀석을 부탁하고 일어섰다. 앉아서 친구를 배웅했다. 녀석은 현관을 나서는 친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쓸쓸했다. 2~30분을 녀석과 함께 있었다. 술에 취했지만 조금 진정된 듯했다. 내가 입을 열었다.
“내 가볼란다. 눈 좀 부치라. 저녁에 oo 온다고 했으니, 그때까지만 눈 좀 부치라.”
“그래 알았다. 전화해라.”
녀석은 쓰레기를 버려야 한다며 나를 따라 나섰다. 짧은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차가 출발을 하고 녀석의 옆을 지나갔다. 녀석은 작별인사를 한 그 자리에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룸 미러에 비치는 녀석은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고독해 보였다. 속도를 높였고, 녀석은 룸 미러에 잡히지 않았다. 창원에 사는 선배를 만났다. 평소보다 술은 급하게 많이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
다음날 녀석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저녁에 oo이 녀석을 만나 같이 술을 마셨다고 했다. 녀석이 많이 진정되어 걱정할 필요 없다고도 했다. 그래서 나는 안심했다. 몸이 피곤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신문을 보고 있었다. 10시 무렵에 전화가 왔다. 창원에 사는 친구였다.
“oo이 죽었다.”
“........뭐라꼬? 다시 한 번 말해봐라.”
“목을 맸다.”
“내 지금 가꾸마.”
“아이다, 경철서 신고도 해야 되고, 좀 수습이 되거든 온나.”
눈물이 났다. 소리 없이 울었다. 아내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oo가....”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내는 그 뒤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2시간여를 기다리다 만류하는 아내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섰다. 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전 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금 가봐야 아무것도 할 게 없다. 가족밖에 없고...내일 아침에 가자.”
“...... .”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렸다. 친구가 죽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너무 서러웠다. 그리고 녀석에게 미안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날이 밝자마자 옷을 챙겨 입었다. 아내가 아침을 차려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난 물만 한 잔 마시고 집을 빠져 나왔다. 몇 km로 달렸는지 기억할 수가 없다.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부산에 사는 친구가 먼저 와 있었다. 녀석의 영정 앞에 섰다. 향을 피우고 술 한 잔을 영정 앞에 올렸다. 영정사진 속의 녀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무표정했다. 먼저 녀석에게 절을 두 번했다. ‘고통도, 고독도, 기다림도 없는 좋은 곳에 가라. 그곳에서 행복하게 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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