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문날의삽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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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날의 삽화 2
저문 날의 삽화 2 - 오동동 막걸리집(일명 대갈빼이집) 마산의 오동동 패션 호텔 맞은 편 좁은 골목길. 그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감나무집이 있고, 그곳과 비스듬히 마주한 곳에 또 다른 막걸리집이 있었다. 감나무집에도 간혹 갔지만, 그곳과 마주한 집을 친구들과 더 자주 갔었다. 우리가 그곳을 자주 애용한 건 순전히 그 놈의 돈 때문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모두 주머니를 털어 봐도 빤했던 게 그 당시 우리 주머니 사정이고 보니, 앞서 소개한 양산박이나 명태전집을 찾게 마련이었다. 우리는 명태전집을 ‘찌짐집’ 또는 ‘대갈빼이집’으로 불렀다. ‘찌짐집’은 전을 부쳐 파는 집이라 그렇게 불렀던 것 같고, ‘대갈빼이집’은 명태대가리로 부친 전이 그 중 제일 맛있었기 때문에 주문할 때면 ‘제일 큰 대갈빼이로 주이소..
2021.06.08 -
저문 날의 삽화 1
저문 날의 삽화 1 박완서 선생의 소설 를 참 재미있게 읽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있어서 ‘저문 날의 삽화’는 있을 것이다. 이제 50이 넘었다. 요즘은 저녁노을이 질 때면, 이미 저물어버린 내 젊은 날의 삽화를 추억하곤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나와 친구들은 서둘러 술과 담배를 배웠다. 성인의 악습을 뭐 그리 급하다고 그렇게 일찍 배웠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만 나온다. 성인이 되려면 술과 담배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물론이고 나의 친구들 중에 불행(?)하게도 악덕 지주나 선주의 아들은 없었다. 그래서 호주머니 사정이 특별히 나은 녀석이 없었다. 우리는 늘 가난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우리들의 사정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대부분 상급학교로 진학을 했지만..
2021.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