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순태 징소리에서의 수몰지구

2021. 5. 11. 14:40소소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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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태 징소리에서의 수몰지구

수몰지구



햇빛 좋은 날
아침이면
눈물이 난다

밤새 게워낸
그리움의 편린
은빛 비늘로 온 하늘 가득
속절없이 매달려
이따금 비수처럼 시나브로
내 가슴에 부숴진다

비워낸 술잔만큼이나
매양 아물지 않는 기억
애오라지 술병 속에 스러져 울고
봄물 오른 계집의 허벅다리처럼
몸살나도록 개나리는 피어나는데...

우울한 새벽
空鳴도 없이
사라지는 안개 속에 흔들렸다
오...래...도...록
잔물결 일으키며 무시로
걸어오는 사람아,

햇빛 좋은 날
아침이면
차라리
눈물이 난다

- 수몰지구 11 전문


 

수몰지구



문순태의 단편 [징소리]는 수몰민들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소설은 댐이 건설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수몰민들의 애환과 서러움을 담아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징소리]는 고향이 수몰지구로 변해버림으로써 그 속에 모든 것을 묻어야 하는 수몰민의 아픔을, 그리고 영혼의 안식처라 할 수 있는 고향을 이제 이 세상 어느 지도에도 찾을 수 없는 실향민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고향은 단순한 현실적 공간을 넘어 자기 존재의 근원지이기 때문에 그것을 상실한 이들의 처절함은 소설 속 주인공 칠복의 ‘징소리’와 함께 우리 가슴을 울리는 건 아닐까 합니다.

문순태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고향은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온 공간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 소설을 쓰면서, 고향을 인간존재양식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고향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진정성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 같은 생각을 농경사회의 낡은 유물이라고 비판할지 모른다. 이 시대에 고향을 다시 생각하고 그리워한다는 것은 퇴영적 사고이고 낭비적 과거집착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파편화된 익명사회에서 고향은 인간적 삶의 진정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마지막 희망의 길이 아닌가 한다.”


제게 있어 고향 마산은 문순태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몰지구]가 어디 고향뿐이겠습니까? 우리는 때로 어떤 것은 가슴에, 또 어떤 것은 기억이라 불리는 저장창고에 갈무리해 두고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갑니다.


갈 수 없는 수몰지구



하지만 한 잔 술에 못 이겨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넋두리일지라도 혼자 주저리주저리 쏟아내는 [수몰지구]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신 새벽에 올라오는 헛구역질처럼, 아침마다 허허롭게 번지는 그 선혈처럼, 그래서 햇빛 좋은 날 아침이면 차라리 눈물이 나는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수몰지구]를 빌어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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