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9. 12:18ㆍ소소한 일상
가버린 친구 이야기 2
몸은 취하는데 의식은 취하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아 담배를 수시로 찾았다. 의식이 혼미해지다가도 자동차 소리에 의식을 되찾곤 했다. 창 너머 여명이 내 머리맡에 번져올 때까지 나는 잠들지 못했다. 오락가락하는 의식 속에서도 녀석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오전 7시. 전화벨소리에 선잠을 깼다. 녀석이었다. 밤새 무사한 데 감사했다. 하지만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녀석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고, 쓸쓸했다. 그 목소리가 나는 무서웠다. 그림자 짙게 드리워진 그 목소리에 나는 몸서리쳤다. 나의 무서움을 녀석도 알지 못했다. 내 무서움을 감춰야 했다.
“이게 인자 마지막 전화다. oo아, 다른 친구들하고 잘 지내고, 행복해라.”
“무슨 소리고 인마, 죽기는 와 죽는데. 세상에 여자가 하나밖에 없나?”
“그래도 니는 내 친구였다......”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좀 자라, 잠도 못 잔 것 같은데......”
“잠이 안 온다.”
전화를 끊고 창원에 사는 한 친구에게 절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집을 나섰다. 어지러웠다. 오전에 할 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마산으로 차를 몰았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급했다.
서부산 톨게이트를 통과하고, 부산에 사는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친구도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친구의 목소리는 무엇엔가 짓눌린 듯 무거웠다. 나는 ‘지금 녀석한테 가고 있다, 별일이야 있겠느냐, 나중에 전화하마’고 했다. 차는 속도를 내고 있었다.
녀석의 집 근처에 차를 세우고, 애써 침착하게 녀석의 2층 집으로 올라갔다. 창원에 사는 친구와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났다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말없이 현관으로 들어서자 둘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창원에 사는 친구는 잘 왔다고 했다. 그리고 녀석을 좀 말려 달라고 했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니가 우짠 일이고?”
“문디 자슥, 우짠 일은......, 친구가 간다는 데 마지막은 봐야 안 되겄나?”
“......”
창원에 사는 친구가 입을 열었다.
“원중이 니 들어오기 전에 저 방에서 난리를 떨었다. 내는 도저히 못 말리겠으니 니가 우째 좀 해봐라.”
친구가 가리킨 방엔 장롱이 반쯤 기울어져 있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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