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8. 12:50ㆍ소소한 일상
가버린 친구 이야기 1
12년 전, 먼저 가버린 친구 이야기이다.
지난 5월 중순. 자정이 지나 친구의 전화가 왔다. 늦은 시각에도 전화를 하는 친구라 ‘또 한잔 했구나’ 하고 평소처럼 무덤덤하게 받았다. 술 취한 친구의 음성이 그날따라 처량하게 들려왔다.
“자나?”
“아이다... 술 한 잔 했네. 와 무슨 일 있나?”
“아이다. 고마...보고 싶어서...목소리 들었응께 됐다. 잘 자라.”
“.......”
느낌이 이상했다. 평소 친구답지 않은 떨리는 목소리가 왠지 불길했다. 곧바로 잠자리로 들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벌겋게 담배가 타들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친구의 목소리 같이 쓸쓸하고 고요했다. 쉬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밤새 뒤척인 탓에 몸이 무거웠다. 친구에게 별일 없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친구의 전화는 없었다. 평소보다 일찍 귀가해 반주로 소주 한 병을 마셨다.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문자가 왔다. 녀석이었다.
‘친구가 힘들 땐 대책을 이야기하기보단 희망을 이야기해 주는 친구가 그립다고들 하네.’
무슨 일이 있다 싶어 전화를 걸었다. 어제처럼 친구는 취해 있었다. 축 늘어진 음성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원중아, 잘 살아라. 아등바등 살아봐야 거기서 거긴데, 와 이렇게 사는가 싶다. 내는 인자 고만 살란다.”
“무슨 일이고, 말로 해 봐라!”
“xx이가 집을 나갔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xx는 녀석의 아내(사실혼 관계)다. 그녀는 녀석의 첫사랑이고, 아이가 없는 녀석에게 그녀는 삶의 전부였다. 그런 그녀가 녀석의 곁을 떠난 것이었다. 어떤 위로의 말도 나는 해주지 못했다.
지난 설날 무렵에 구조조정으로 서울서 고향 마산에 내려온 녀석은 내색은 안 했지만 힘들었었다. 그래서 나의 말은 아무런 위로가 안 될 터였다. 그녀가 떠난 뒤 홀로 남은 녀석의 아픔을 나는 가늠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소주를 조금 더 마셨다. 별 탈 없이 넘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러나 나의 바람은 단지 바람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날 밤에는 그렇게 바람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사는 것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친구의 아픔을, 지독한 외로움을 그때 나는 헤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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