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6. 15:45ㆍ소소한 일상
이 글은 이기철 형님이 쓴 책 칼럼이다. 맛깔스런 문장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 글 덕에 몰랐던 형님의 투병기를 알게 됐고, 압둘 와합을 알게 됐다.
내 친구 이기철 형님의 건강과 압둘 와합의 고국, 시리아의 평화를 기원한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내 친구 압둘 와합을 소개합니다/ 김혜진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10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당했다. 당장 내일을 알 수 없는 막막함에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라는 변수까지 생겨 하루하루가 살얼음 딛는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팬데믹이 선포되고 오갈 수 없는 상황과 바이러스 위협은 생존을 위협했다.
간암으로 치달을 뻔한 위기. 나는 병상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차오른 복수(復水)로 말미암아 목소리는 생기를 잃었고 호흡은 간단없이 숨쉬기가 때로는 벅찼다. 가족들 걱정과는 별개로 나에게 지워진 짊을 감당해야 했다. 앞으로 어찌 될 것인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다. 터널은 예상외로 길고 어두웠다.
2019년 11월, 내가 벌인 전투는 올해 5월이 되어서야 멈췄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인 상태다. 자칫 잘못 관리하면 회복은 요원한 일이 된다. 여기까지가 내가 병마와 겪은 국지전이다. 신앙 간증을 하려고 말을 꺼낸 것은 아니다.
실크로드 종착지이자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가 만나는 문명 교차로, 바울이 다메섹(다마스쿠스) 거리에서 예수를 만나 마음을 돌이킨 사건이 일어난 ‘사도바울회심교회’가 있는 곳, 시리아.
그곳에서 온 한 남자 ‘압둘 와합’, 나처럼 아주 오래 고통을 견디고 있는 이웃을 소개하려고 한다.
고국 시리아에서 다마스쿠스 대학 법학과를 졸업, 변호사로 활동했지만 궁극에는 법학 교수가 되려고 마음먹었다. 권력 하수인 역할을 충직하게 수행하는 경찰이 되려고도 했다.
그랬다면 운명은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국민을 고문하고 죽이는 쪽이거나 자유시리아군이 되어 독재자와 싸우고 있을지 죽었을지 모르겠다.
아픈 고국을 잠시 두고 그는 유학을 결심했다. 처음에는 전액 장학금이 보장된 프랑스 소르본 대학으로 갈 계획이었다. 그는 고향에서 인연을 한국인 친구들로부터 ‘코리아’를 배우는 한편 수교가 되지 않은 두 나라를 위한 가교가 되고 싶어 했다.
프랑스 소르본 대학으로 가려 했던 일은 좌절이 아니고 한국행이라는 선택으로 바뀌었다. 2009년 1월 아합은 한국에 도착했다. 어학원에 등록, 한국어도 열심히 배웠다.
한국에서도 전액 장학금을 당연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계획은 틀어졌다. 시리아와는 수교를 맺지 않아서 정부 장학금은 일체 받을 수 없었다. 각 대학 입학 사정을 알아보며 다녔지만 실망과 절망, 걱정이 마구 뒤섞여 어떤 게 먼저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간난신고(艱難辛苦),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올해 2월 한국 국적도 갖게 됐다.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상법을 공부하며 ‘아랍법과 한국법 비교 연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준비 중이다.
그러나 그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2011년 1월, 한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고향을 잠시 다녀 왔지만 시리아 정국은 더 혼돈 속으로 빠져가던 시점.
같은 해 8월 재차 방문하려 했으나 출국장에서 ‘절대 돌아오지 말라’는 아버지로부터 걸려온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그는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인물이었다.
아합은 다마스쿠스 공항에서 자국(自國) 프랑스 유학생 두 명과 만나기로 약속까지 해두었다.
훗날 밝혀진 바로는 두 사람은 귀국 즉시 체포, 싸늘한 주검이 되어 집 앞에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그중 한 사람이 아합 친구였다.
시리아를 잘 모르는 이가 많다. 도대체 그 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독재자 알아사드 정권을 둘러싼 암투나 복잡한 상황도 문제지만 더 큰 이유는 백성을 돌보지 않는 권력자와 일당, 자국 이익을 이리저리 재며 쉽사리 중재하지 않으려는 나라들.
전쟁 이후 생길 이익을 어떻게 나눠 가질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원은 없다는 황당한 현실. 이러니 아랍 일부 국가는 물론 상황에 따라 지원군이 되었다가 적군이 되어버린다.
여기에다 마치 구호단체처럼 도와주는 척하며 들어와 등골을 파먹는 IS까지. 순수하고 정의로운 목표를 위한 시리아 민중혁명은 ‘시리아 전쟁’이 돼버렸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시리아를 둘러싼 강대국 간 이익 충돌이라는 점이 더 힘을 얻고 있다. ‘내전’으로 치부(置簿)하지만 ‘제3차 세계대전’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또 근거 없는 이슬람에 대한 혐오까지 한몫해 전쟁으로 생긴 난민들을 우호적 시선보다 오해와 무지로 인한 충돌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멀리 갈 일도 아니다. 2018년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들에 대한 상황을 복기(復記)해보면 된다.
2011년 2,300만 명이던 시리아 인구는 2018년 1,691만 명이 되었다. 10년 동안 1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레바논 140만 명, 요르단 100만 명, 터키에 400만 명 이상 난민이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까지 온 이들은 1,500여 명, 이중 난민 인정자는 5명뿐이다. 나머지 대부분은 인도적 체류자 신분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합 가족은 사선을 무사히 넘어 현재 터키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는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평화로운 고향 땅으로 돌아가 집 앞 물 맑은 유프라테스강에 발을 담그고 꿀처럼 단 수박을 먹으며 한국에서 시리아를 사랑해주는 이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소망.
내가 깊은 병중에 있을 때 가족이 먼저 똘똘 뭉쳐 연대해주었고 친구를 비롯 지인들이 무사함을 빌어줬다. 난 상처가 아물어 가는 중이다.
아합에게도 그런 위로가 필요하다. 우리는 ‘덕분에’라는 힘을 경험해서 잘 안다. 특히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이들에게는 응징이 필요하다.
미얀마에도, 홍콩에도, 시리아에도 봄이 다시 찾아와 온 지상 약한 것처럼 보이는 존재들이 가진 위대함을 보여줘야 한다.
아합 SNS에는 이런 글이 남아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내 손을 잡아준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예요. 친구들아. 내 손을 잡아줘서 고마워요. 잊지 않겠어요.’
이 책을 낸 김혜진 씨는 수줍은 국어 선생이다. 그가 대신해준 메신저 역할은 때로 누구에게 SOS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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